‌竹川宣彰  Takekawa Nobuaki

LEE : 안녕하세요. 초창기 작품 활동부터, 와타리움 미술관 기획전까지 천천히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작업을 진지하게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TAKEKAWA : 안녕하세요. 전세계적으로 중국의 영향력이 강해져 미국 중심의 미술 가치 체계가 붕괴되고, 아시아에 새로운 기준이 생겨날 미래를 상상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함께 이야기 나눌 동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당시 중국의 사상가 쑨꺼(孫歌)를 보며 아시아를 사고하는 방식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또 졸업 작품을 제작하던 당시 미국에 믿을 수 없는 테러 사건이 있었습니다.‌ 미술이 무력하게 느껴졌어요. 제 자신의 미술관(美術観)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미술사는 미술의 변화를 기록하는 일뿐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이죠.

LEE : 도쿄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계시는데요. 도쿄는 어떤 영감을 주는 도시인가요?
TAKEKAWA : 도쿄 주변을 둘러싼 여러 예술인 마을이 생겨나고 있어요. 집세가 비싸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작가들은 도시 중심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정 분야의 네트워킹은 장점도 많지만 작가의 시야가 좁아지기 쉽죠. 개인적으로 Hate Speach를 포함한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LEE : 작업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먼저 2011년 동일본대지진 이후, < Nomadism >을 발표하셨습니다. 일본의 재난은 작가에거 어떤 사건이었나요?
TAKEKAWA :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함께 수 많은 주민이 피난길에 올랐어요. ‌피난민이 키우던 가축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유롭게 풀어 놓은 것이었죠.  당시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난 소나 돼지 같은 가축 무리의 풍경이 메스컴에 자주 소개되었어요.  그 장면의 기묘함이 인간의 삐뚤어진 자연관을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자연은 소비문화와 함께 상품으로 재해석됩니다. 우유는 콜라 같은 용기에 넣어져 음료가 되며 전기는 콘센트 없이 생각할 수 없게 된 것처럼요. 당시 이런 지점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LEE : 유례없는 대재난에 관한 관심은 < Island of Nuclides >에도 개입하게 됩니다.  체르노빌, 원폭 사태 등, 일련의 사건을 굳이 지도의 형태로 기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TAKEKAWA : 방사성 동위체(同位体)를 포함한 원소표를 대항해시대 섬의 지도 형식으로 작업했어요. 과학자가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여 표로 적어 두는 현대사회가 마치 대공항시대의 탐험심을 닮은 것 같았죠. 하지만, 인간의 탐구심은 종종 불행을 자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례로 후쿠시마, 체르노빌, 히로시마는 유례없는 인간의 재난사입니다.  재난을 작업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과 어떤 맥락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고민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 재난, 사회, 아티스트

LEE : 재난 상황이나 사건 자체를 조명하시다가  < Diary of a bird of passage in a posture >은 더 자연의 소재물을 작업에 도입하거나, 공익적 목적을 가진 미술의 형태로 변화하는 경향이 보입니다.
TAKEKAWA : 2011년 원전 사고의 원인으로 일본 사회는 자연에 대한 자세를 재정립하는 운동이 여럿 보이기 시작했어요. 당시 < Diary of a bird of passage in a posture >은 새장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제작하게 되었어요. 構え란 단어를 테마로 하여 글자 모양을 본 떠 조형물을 설치하였습니다. 한자 구(構)의 좌측이 목(木)이며, 우측의 冓(구)를 새장으로  “구(構)”의 미학이 형식화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하고자 했던 한자 테마 작업이었어요.

LEE : 이때부터 전시장을 나와 사회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고민하셨던 것 같아요.
TAKEKAWA : 일본에서는 2013년부터 차별시위에 대한 유의미한 카운터 활동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또 소셜리 인게이지드 아트를 새로운 아트 분야로 도입하는 조류도 보였죠. 하지만, 이 조류에 우려되는 부분은 “사회 문제”를 무시하면서 “사회 문제에 몰두하는 아트”를 지향하는 모순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장에는 음악 관계자가 굉장히 자주 보이는데요. 한편, 미술 관계자는 소수인‌ 것 같아요. 만약 제가 소셜리 인게이지드 아트로 차별 시위에 대한 워크숍을 진행한다면, 그들은 모습을 보일지 모르겠죠. 하지만 미술의 모순을 사회에 과시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대로라면 아트는 오히려 인간의 지성에 악영향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미술계에 있는 사람이 소셜리 인게이지드 아트를 행하는 것보다, 사회 운동 안에서 크리에이트브적 활동이 미술의 인프라가 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2013 Takayuki Mishima

LEE : 말씀하신대로 '사회 문제'를 아티스트로서, 혹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어떤 방식으로 맺어가려 하나요?
TAKEKAWA : 저는 "아티스트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사고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복흥 작업의 한 사람이 되거나, 시위 현장의 한사람이 되는 일은 미술 분야 이외에 모든 분야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해나가고 있어요. 그 후에 “아티스트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게 건전하다 생각합니다. 저에게 있어 사회적 작업이란 것은 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과 용기를 복 돋으며 활동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음악은 많은 경우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LEE : 2015년 참여한 < Don't follow the wind >은 조금 더 쿨해보이네요. 후쿠시마 진입 제한 구역에서 전개한 프로젝트였습니다.
TAKEKAWA : 이 전시는 Chim↑ Pom‌의 기획으로 참여한 전시입니다. 방사능 피폭 구역에서 진행되어, 사실상 관람객의 출입이 불가능한 곳이죠. 작품을 볼 수 없는 부조리는 집이 오염되어 귀가할 수 없는 피난민의 부조리에 중첩됩니다. 프로젝트는 현재도 개최 중이에요.

-사무라이 재팬

LEE : 타케카와씨의 초기 작업에서 벌레 소재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벌레는 작업의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TAKEKAWA : 처음에는 벌레를 좋아해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는 편이었어요.(당시 너무 많은 벌레를 그려 지금은 지겨워졌지만.) 귀여운 벌레들은 조감의 이점이 있어요. 예를들어 헤이트 스피치의 영상을 YouTube에서 보고 있자면, 정신 건강에 해롭습니다. 하지만, 벌레는 좀 더 그들의 내러티브를 대중에게 공개하기 용이하죠. 벌레를 싫어하는 사람에겐 안될 일이지만요. (웃음)


LEE : < Cicada's eclosion & I >에서는 구체적인 벌레로 매미를 작업에 도입하게 됩니다. 말씀하신 조감의 이점과 유사한 맥락인가요?
TAKEKAWA : 매미의 가계도를 사용하고 50년마다 시간을 계산하면서 인간의 역사 풍속을 재어보는 작업이었어요. 매미는 7년마다 지상에 나타나기 때문에 시간을 측정하기에 적합하죠. 가계도로 제작한 이유는 조상의 방대함을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목적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처음 제작한 Cicada;s eclosion & I 는 지인의 인생을 매미의 라이프스타일로 측정해본 실험이었습니다. 삶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 감각에서 떼어놓을 수 있을까? 당시 역사로 접근하는 신선한 방법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개인의 역사를 다루며, 점점 역사적 시간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야구 일본 대표를 사무라이 재팬이라 부르는 것의 무의미함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LEE : 사무라이재팬이 무엇인가요?
TAKEKAWA : 사무라이 재팬은 야구 일본남자대표의 공식 명칭입니다. 또는 사무라이 JAPAN, 사무라이 블루 등으로 불리죠. 왜 공식적 애칭으로 사무라이가 들어왔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요. 추측이지만, 일본인은 자긍심 높은 전사 사무라이의 후손이라는 의식이 강해요. 그러니까 사무라이라는 애칭을 사용함에 따라 국민이 단결하고 스포츠의 내셜널리즘을 응원하는 것이죠. 하지만, 오래 전 특권적 직업이었던 사무라이를 일본인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대치시키는 일은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사무라이는 인구 7% 정도의 상류 계급이었으니까요.

- 헤이트 스피치, 차별과 충돌

LEE : 최근의 작업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2015년의 r:ead 레지던시나 Ota Fine Arts같은 아시아 네트워킹 프로그램에 종종 참여하였습니다. 어떤 경험이었나요?
TAKEKAWA : 일본은 아시아제국주의의 뿌리를 둔 경제성장에 집중하였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현대의 일본인이 아시아를 상상하는 방식에 큰 오류로 작용하고 있어요. 아시아를 생각하는 담론의 장을 공유하는 인근 국가의  프로그램은 언제나 기쁜 일입니다. 2015년 r:ead 레지던시에 체류하며 한국전쟁 당시 전선의 움직임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없는 DMZ에서 조용히 하늘을 나는 학 무리, 그 학의 등에서 갓 태어난 아이의 이미지를 표현하였죠. 지속되어온 남북 문제를 일본 제국주의 사관을 중첩시켜 한반도 평화와 식민 사관의 책임을 화두로 던져보았습니다.

LEE : 저는 일본에 거주할 당시, 제국주의 노스텔지어가 어떻게 보수의 정치적 단결로 작동되나 관심있게 지켜보았습니다. 아시아 유일 세계 대전 참전국이란 왜곡된 교육관도 주목해 볼 일인 것 같습니다.
TAKEKAWA : 시민의 정치적 단합을 가로막는 것을 보다 직접적으로 지적하려면 향수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두려움이라 생각합니다. 일본의 대동아 침략을 부득이 한 것으로 평가하는 경향과, 전후 아카데미즘이 아시아 침략의 가담을 반성하는 일은 일본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일이죠.


LEE : 현재 진행중인 와타리움 미술관에서 < 이유 없는 반항전 > 일본의 민족주의적 인종차별자들에 대한 저항을 발언하고 있습니다. 프로젝트 설명좀 부탁드리겠습니다.
TAKEKAWA : "이유 없는 반항"전은 "전설"의 작가에 의한 넓은 의미에서 반항적인 작품을 소개하면서 일본 사회의 반항의 분위기와 공명하는 전람회입니다. 와타리움 미술관은 개관한 90년대부터 지하에 병설된 서점 onSundays와 함께 시부야 거리 문화를 견인하는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거리의 눈높이에서 이른바 거리 문화에 관계가 깊은 아티스트 BIEN씨, 그리고 차별이나 정치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스트리트에서 태어난"¡Nopasarán!"을 전람회에 올린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레이시스트 시바키대"에 참여하면서 2013년에 제작한 "¡Nopasarán!"이란 작품은 차별자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낸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미술 작품으로 공개적으로 논할 수 있는 기회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그 작품이 "이유 없는 반항"에 전시되었습니다. 


LEE : 일본의 인종차별 문제는 뿌리깊은 열등감이나 알 수 없는 불안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아티스트로서 어떤 태도로 접근하고 있습니까?
TAKEKAWA : 침체하는 일본 사회가 떠안은 스트레스는 다양한 현실의 충돌을 낳았습니다. 차별 단체"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회)"와 대항하는 "레이시스트 시바키대"의 충돌도 그 일례입니다. 대부분 아티스트들은 "각각의 정의"가 충돌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며, 중립적 입장으로 아티스트 다운 방법을 선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런 태도에는 많은 모순이 있다고 생각해요.


LEE :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시도하고 싶은 작업이 있나요?
TAKEKAWA : 한국에 체류할 당시, 믹스라이스에게 여러 활동을 소개받았습니다. 일본에서 현재 일어나는 문제와 연결된 지점이 많았어요. 일본은 정치적 목적에 의한 역사수정주의가 강해지고 있습니다. 곧 난징에 가서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2016년 아이치 비엔날레의 출품을 위한 난징 대학살 기념관을 취재한 일이 트리엔날레 사무국에서 문제시되었죠. 역사수정주의에 저항한 행동을 하고 싶어요. 일이 더 진행된다면 난징에 일본이나 다른 주변국 작가들이 부담 없이 출입할 수 있는 개방적인 환경을 만들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