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MAR 2018
Interviewee: Kim Bo Yong (KIM)
Editor : Moon Su Yeon(MOON) Lee Wei (LEE)
Korean
LEE : 만화를 그리다, 공연 예술까지 매체가 많이 바뀌었다.
KIM : 유년부터 스무살 초반까지 만화를 그렸고, 이후 드로잉, 콜라주, 페인팅, 오브제, 설치 등으로 작업 형식이 다양해졌다. 공간 자체를 연출하는 설치 작업이나 영상 작업을 하기도 했다. 2차원에서 3차원, 그리고 시간을 편집하는 일 등 다양한 매체 경험들이 공연예술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배경이 된 것 같다.
LEE : 퍼포먼스 작업으로 페스티벌 봄에서 < Tele-Walk>를 발표하게 되었다.
KIM : 내가 하는 일이 공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졸업작품으로 만들고 있던 영상 작업이었는데 공연화되었다. < 텔레 워크Tele-Walk >는 해가 진 어두운 산에서 진행되는 공연이다. 청계산 능선 위에서 두 명의 퍼포머가 불빛을 들고 걸어가는데, 관객은 두 불빛의 궤적을 멀리서 바라본다. 이 불빛과 관객의 거리는 2km 정도 된다. 관객은 예술의 전당 앞에서 대형 버스를 타고 우면산 터널을 거쳐 관객석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 위 야외 전망대까지 함께 이동한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객석에 위치한 나와 능선 위에 있는 퍼포머가 연습 기간 동안 무전기를 통해 나눈 대화 일부를 듣는다. 관객이 객석에 도착할 때 즈음에는 해가 이미 넘어가고 어둠이 찾아올 때가 된다. 잔디밭 위에 있는 낚시용 의자에 앉아서 실루엣으로 보이는 청계산을 보면 눈곱만한 불빛이 켜지고 공연이 시작된다. 하나는 능선 왼 편에, 다른 하나는 오른쪽 정상 부근에. 불빛은 서로를 향해서 걸어가다가 만나고 스쳐 지나간다. 총 40분 정도 소요된다.
LEE : 작업을 진행하기 까지, 어떤 경험이 계기가 되었나?
KIM : 어렸을 때 가족과 산에 자주 갔다. 덕유산에서의 기억이 가장 많이 남아있다. 정상까지 올라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랜턴에 의지하여 야간 산행을 했다. 어둠 속에서 시각이 축소되면 다른 감각이 예민해진다. 다양한의 소리, 냄새, 질감, 다양한 존재. 이 같은 자연에 대한 인상이 남는다. 과거의 경험이 작업과 긴밀한 관계를 이루진 않지만 공감각적 체험이라는 면에선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한다.
LEE : 제목이 독특하다. 어떻게 짓게 되었나?
KIM : 원래는 텔레비전이라는 말에서 시작했다. 텔레비전은 영상 수신기의 명칭이지만 그리스어로 ‘멀리-보다Tele-Vision’라는 감각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관객의 상태를 강조하는 Vision에서 하나의 빛으로서 걷고 수행하는 퍼포머의 상태를 강조하며 텔레워크Tele-Walk가 되었다. 당시 학교에서 ‘백남준 연구'라는 트랙을 전공하며 아시아 관점의 문명사, 미디어 인문학, 플럭서스 등 동서양을 종횡으로 배웠는데 텔레비전에 대한 이야기도 당시에 배운 것이다. 백남준은 과거 새로운 테크놀로지에서 오래된 감각을 본다. 시원적 감각이라고 일컫는 ‘멀리 보기'의 상태가 현대의 기술로 인해 어떻게 다시 발현되고, 변형되는지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흘러 오늘날 먼 것을 보는 행위에서의 거리와 시간에는 많은 일들이 생겼다. 다른 방식으로 이에 대해 접근해보고 싶었다.
LEE : 공간이 제한된 블랙큐브가 아닌, 야외의 퍼포먼스였다. 진행에 어려움은 없었나?
KIM : 극장에서는 사람과 기계의 힘으로 빛, 소리, 시각적 장치들까지 많은 것을 컨트롤 한다. < 텔레워크 >는 인간이 컨트롤 할 수 없는 자연을 상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변수를 연습 과정에서 체험해야했다.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변하며 해가 지는 시간이 달라지면 연습 시간도 함께 달라졌고, 눈과 비를 맞으며 연습하거나, 순식간에 운무가 앞을 가려서 연습이 불가능한 적도 있었다. 매번 똑같은 코스로 오르던 산이 어느 때엔 다르게 느껴져 길을 잃은 적도 있었고. 봄 철, 나무에 새싹이 돋아 녹음이 지면 그만큼 불빛이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걱정도 있었다. 실제 공연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또 하나는 퍼포머가 들고있는 불빛에 집중 할 수 있도록 주변에 있는 모든 인공 조명을 끄는 것이었다. 미술관 건물 내에서 바깥으로 비치는 모든 조명을 포함해서 주변 가로등까지 모두 소등해야 했다. 심지어 퍼포머가 걷는 청계산 능선 정상에 있는 군부대의 경계등이 있었는데 그것도 껐다. 끄기 위해 많은 도움이 필요했다. 무언가 만들고 더하는 일보다 빼는 일, 하지 않도록 하는 일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LEE : 퍼포머들과 관객 사이는 꽤 거리가 있다. 청계산 쪽 조명 빛이 잘 보였나?
KIM : 별 빛처럼 보인다.
- Tele walk,멀리보기
LEE : ‘멀리보기’는 감각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 그리고 그러한 감각을 작품으로 체험하는 일은 무엇인가?
KIM : 우린 기계를 빌려 혼자서도 지구 반대편 멀리 있는 일들을 거리감 없이, 시간,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가까이서 마주한다. 특정한 시간, 장소 없이 자유로운 접속이 있는 시대에 시간과 거리의 감각은 없어도 좋을만한 것이 된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거리가 있는 곳에서 살아가야 한다. 거리는 이것과 저것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니까 관계에 관한 것이다. 거리가 없으면 관계도 없다. 거리를 감각한다는 것은 관계를 생각하는 일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특정한 시간에, 멀리 있는 무엇을 함께 바라보는 일은 언제 발현되나. 극장에서 영화, 공연을 볼 때, 스타디움에서 운동 경기를 볼때 정도로 조직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곳에는 거리 대신 이야기와 스펙터클, 점수가 놓여있다. 이것들 없이 더 먼 거리를 두면서도 순수하게 거리를 감각하는 일은 새해맞이 정도로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정도의 일이 된다. 시간과 거리가 없고 정보만이 있다고 여겨지는 오늘날 그 관계를 역전시켜서 아주 큰 거리감을 만들고, 그것을 꿈뻑 꿈뻑 함께 감각해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감각하는 세계는 항상 사회가 우리에게 피드하는 방식 안에서 디자인되고 길들여진다. 어떻게 우리의 감각이 사회에 의해서 형성되고 조직되는지를 증명하는 일보다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역학을 만들고, 재조직하고, 감각을 반죽하는 일 정도가 텔레워크에서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LEE : 초기 작업의 거리와 감각에 대한 관심은 <ARS가설극장>까지 연결된다.
KIM : 극작술이나 극장 내부의 생리, 시스템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었고, 텔레워크를 통해 극장 바깥에서 객석과 무대의 관계에 대해 처음 고민했다. 그 관계에 대한 고민이나 실험이 ARS가설극장까지 이어진 것 같다. 텔레워크에서 장소 특정적인, 시각 중심의 거리감을 다뤘다면 여기서는 청각 중심의, 장소 불특정적 거리감을 다뤘다.
LEE : 작업을 어떻게 전개하였나?
KIM : ARS 시스템을 사용해서 전화로 접속하는 사운드 공연이다. 1588로 시작되는 서비스 번호를 만들고 사전에 녹음한 음성, 사운드를 넣었다. 1막에서는 부재중 메시지 형식을 띤 녹음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통화 연결음이 들리고 2막으로 넘어간다. 2막은 실시간 대화인데, 콜센터처럼 여섯 명 정도의 퍼포머가 각자의 집에서 컴퓨터로 관객의 전화를 받는다. 실시간 대화지만 직접 대화하는 게 아니라 사전에 녹음된 음성 소스를 디제잉 하듯 그 때 그 때 재생하면서 라이브로 대화한다. 단답형, 의문문, 부정문, 헛기침 같은 효과음, 안부를 묻는 말, 회피하는 말 등 다양한 녹음 소스 카테고리 안에서 대화한다. 공연을 소개하는 인트로, 1막, 2막 전부 한 사람의 목소리로 되어있다. 녹음된 목소리인지, 현재의 목소리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여보세요?’, ‘말씀 하세요.’처럼 상대방을 부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공연 시간, 그러니까 전화할 수 있는 시간은 저녁 10시부터 새벽1시까지였고 6회 공연했다. 청각 중심의 공연이지만 오히려 본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LEE : <Tele-Walk >에서 다루는 거리가 <ARS가설극장>에서는 더 멀어진 것 같다.
KIM : 대구, 부산 등 지방에서 전화하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물리적 거리는 확장되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전화는 은밀하고도 사적인 도구니까 관계적 거리는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1588로 시작되는 번호는 사적 관계가 제거된 서비스 플랫폼이기도 하니까 무조건 가깝다고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LEE: 거리에 대한 관심은 최근 진행중인 <반도투어>까지 이어진다. 어떤 계기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나?
KIM : 예전부터 별 이유 없이 공항 가는 걸 좋아했다. 어딘가로 가고, 어딘가에서 오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잠시 머무르는 장소, 전광판에 표시된 여러 목적지의 시간표, 비행기라는 이동수단 등 공항에 있는 다양한 다이내믹스를 하릴없이 보는 일이 좋았다. 공항이라는 장소, 비행기라는 이동수단이 편집하는 세계, 세계와 연결된다는 감각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는 이동하는 과정에 대한 체험을 생략한다. 이동하는 과정과 상관없는 일, 잠자고, 영화보고, 시간을 죽이고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낯선 나라에 도착해있다. 세계를 자유롭게 여행하는 일, 세계를 감각하는 일, 지도를 통해 알고있는 세계, 이 모든 것들이 특히 한국과 같은 상황에서는 근본적으로 관련 없는 일인 것 같다. 비행기는 한국에서 해외로 나가는 거의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어느 때보다 자유로운 해외 여행의 시대를 맞고, 세계화된 이곳에서 우리가 정말 세계와 연결되는 감각적 체험을 하고있는지 의문이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라는 것이 결국 사회가 디자인한 방식 안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그 자유로운 방식을 통해 더 고립되는 것 같은 역설적인 상황들에 대해 생각했다. 문득 한국에서 육로를 따라 대륙으로 통하는 길을 확인하고 싶었고 위성지도를 통해 길을 학습하면서 작업이 시작됐다. 2013년에 영상작업으로 시작해서 현재 공연화 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LEE : <반도 투어> 역시 거리라는 개념이 반복적으로 보인다.
작업할 때 거리라는 것에 대해 의식하고 하진 않는다. 모든 관계의 이야기는 거리에 관한 것이기도 하니까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다만 나는 그 이야기를 감각적이고 물리적인 영역으로 접근하고 풀어내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 반도투어 >는 지구 밖 카메라의 시선으로 조망하는 위성 지도와, 위성지도를 학습하며 대륙으로 갔던 길 중 내가 육로를 따라 갈 수 있는 마지노선을 여행한다. 이 과정에서 북한을 여행했던 과거 서독 출신 독일인을 일본에서 만나기도 하고, 중조 접경지역인 단둥에 다녀오기도 했다. DMZ 근처에서 베를린 장벽을 만나기도 하고. 이를 통해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반도의 감각을 상상하거나 재구성하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가 인식하고 감각하고 있는 반도의 복잡성을 이해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 육로, 항로, 통신로를 따라 계속 리서치 중이다.
LEE : 분단이란 외부 사건이 거리를 감각하는 몸의 신호를 바꾼 것 처럼 보인다.
KIM : 나의 경우 바뀐 적이 없다. 애초에 가져본적 없는 감각이었으니까. 굳이 세대를 구분하자면 나는 전후 3세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분단의 아픔’, ‘통일 염원’이라는 민족적 표현보다 ‘탈조선'이라는 탈민족적 단어에 대해 더 공감할 수 있는 세대다. ‘민족', ‘우리'라는 말보다 ‘개인', ‘개성'이 중시되는 시대에 살고있으니까. 민주화 시대에 나고 세계화를 경험하고, 89년도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한 해 70만명에서 현재 2500만명이 자유롭게 여행하고 해외 생활을 계획하는 이곳에서 민족정신 없음이 비판의 대상이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 역시 현실 일부로 받아들여 생각해본다. 외려 이 반도라는 것에 관심가질만한 이유가 나에게 전혀 없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이 작업을 하게 만드는 추동력이 된 것 같다.
LEE : 앞으로 계획은?
어느 때보다 예술가들의 창작을 장려하고, 삶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서포트가 세심하고 친절한 것 같다. 사회가 친절하고, 배려심 많고, 착한 방법으로 예술가와 예술환경을 디자인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그러한 지원을 보이콧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삶의 주기, 작업의 주기를 그것에 맞추지 않고, 끌려다니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재조직 해야하는가 고민해볼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은 지원 없이 작업을 만들고 있다. 이게 좋은 방법이라거나 대안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울 정도로 부끄러운 일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올 한 해는 이런 방식으로 공연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작년 하반기부터 < 반도투어 > 리서치를 하고있고 먼쓸리 퍼포먼스를 통해 작은 프리젠테이션을 두 차례 정도 가졌다. 계속 발전시켜서 올 9월 정도에 작은 극장에서 발표해볼 예정이다. 장기적으로는 현실 안에서 어떠한 삶과 예술을 조직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