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영    Cho Jai Young

LEE :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업이야기까지 천천히 해보고 싶습니다. 먼저, 네덜란드 유학생활이 궁금합니다
CHO : ‌기본적으로 굉장히 많은 말을 하는 문화인 것 같아요. 대화가 많고, 우리는 조금 과묵한 문화잖아요. 거기는 하나의 주제가 나오면 한도 끝도 없이 얘기를 해요. 사소한 얘기라도 거침없이 얘기하고 솔직한 편인 것 같아요. 격없이 얘기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좋았어요. “아트”라는 것 자체를 리서치 개념으로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아트보다는 아티스틱 리서치artistic research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무브먼트 개념도 당시에 새로웠죠. 사회 운동으로서의 무브먼트 활동이 많이 일어났어요. 전통적인 전시가 진행되지만, 실험적인 공간도 상당히 많았죠. 제 기억으로는 당시에 재정적으로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지만요. 실험적인 공간이 없어지는 추세라는 말은 들었죠. 그래도 공동 행동을 한다거나, 다채로운 일이 일어났고, 참여도도 높았던 것 같아요.

LEE : 공동 행동이란게 인상깊은데요. 한국에 돌아오셔서 동료들과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CHO : ‌주로 레지던시에 있었던 편이에요. 공동체 생활을 하며 생활의 일부분을 나누기 때문에, 인간대 인간의 유대감이 긴밀히 쌓였던 것 같아요. 외부의 시스템, 우리를 보여주기 위한 제도적 문제의 아쉬움을 자주 얘기한 것 같아요. 미술의 구조 자체가 유행에 민감한 것 같고, 세대나 시대의 특징이 이슈가 되면 확 빠지는 현상이 종종 보여요. 새로운 건 좋지만, 여러 세대가 공존하는 다양한 이슈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요.

LEE : 미술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셨을 당시 한국의 미술계는 어땠나요?
CHO : ‌쌈지스페이스, 루프, 사루비아, 아트스펙트럼 등 비영리 미술뿐 만 아니라, 상업미술도 굉장히 활발할 때 였어요. 일각에서는 거품이었다는 말이 있지만요. 어린 나이에 이곳 저곳 보러 다니면 하루가 다 갔죠. 대학 이전에 워낙 정보가 없었던 터라, 당시에는 실험적인 미술 공간에 다니는 게 너무 재미있었죠. 홍대, 종로, 인사동의 미술을 보며 실험적이고 참신한 미술을 해야겠다는 설렘도 있었죠. 하지만, 2007년도에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 짧은 시간 동안 다 가라앉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친구들끼리는 자주 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참신하고 좋은 작가를 보며 기대에 부풀어서 학교를 다니다, 우리가 프로로서 현장에 나왔을 때는 한풀 꺾이는 분위기였다는 것이죠.


LEE : ‌작업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기하학적인 형태가 재미있어요.
CHO : 처음부터 기하학적 형태를 염두한 건 아니에요. 형태의 최종권은 저도 몰라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형태가 대단히 의미있지 않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조각을 전공했고 좋아해요. 작업의 베이스이며, 외적 형태, 조형성이 1차적으로 시선이 가는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기존에 배워온 ‘조각’과는 반대의 액션을 취하고 있는 것 같아요. 조각이라는 건 형태를 추구하고, 내적 콘텐츠를 담아내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제 작업은 이 안에 내적 의미를 담지 않거든요. 내적 의미는 비어있고, 과정에 집중하는 편이죠. 작업은 먼저 껍질을 만들며 시작해요. 사물의 커버를 만드는 것이에요. 일상에서도 본질을 생각하며 대상과 현상을 인식하는 것 같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본질에 의심하는 편이죠. 본질은 그 때 그 때, 느끼는 집합이나 현상의 변화라 생각하죠. 대상이나 사물이 독립된 개별성으로 오는게 아니고, 그들과 그들 사이의 관계나 현상, 상황으로 보게 되었어요. 사물을 일정한 상황 속에 배치하고 상황 자체를 캡쳐하듯이 커버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LEE : 이 껍질(커버)는 무엇을 베이스로 만드시나요?
CHO : 숫자를 기반으로 만들기 시작해요.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이해할 때, 언어를 근간으로 하잖아요. 그 언어라는 건 완벽하고 순수한게 아니라고 보거든요. 언어는 불순함, 위계, 이분법, 차별이 있을 수 있죠. 숫자라고 하는게 기존의 언어보다 중립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수치로 어떤 차이를 주고, 베이스로 대상을 인지하게 되는거죠. 이런 단순한 차이가 대상을 인지하게 하는 게 매력있었어요.  

LEE : 설치물은 종이나 나무를 소재로 도입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CHO : 껍질 자체를 두고 봤을 때, 이게 조각의 본질로 봐야하는지 고민했어요. 앞서 언급한듯이 현상은 바뀌고, 1차적으로는 조형물로 보이지만, 일시적인 커버라고 생각해요. 종이는 영구적이지 못한 물성 때문에, 많이 흐물거리고 파괴되기도 해요. 손상된 부분은 잘라내요. 도려내서 다시 새로운 재료를 붙이고, 이 과정을 반복하는 거죠. 기존의 조각은 단단하고 영구적인 형태를 구상하고 목표에 도달되면 보존하죠. 어느 시점에 하나의 형태가 나오는데, 제 작업은 영구적이지 않고, 일시정지 상태라고 생각해요. 재료의 물성 때문에, 구겨지며 파괴될 수 있죠. 이 조각 안에 시간성이 누적되어요. 전시장에서도 완성이 아닌 일시정지 상태에서 전시가 엮이는 거죠.  

LEE : 전시 공간에 따라, 설치물의 형태도 여러가지로 바뀌는데요. 공간은 어떻게 사유하시나요?
CHO : 공간은 근래에 들어서 관심이 생긴 부분이에요. 예전에는 공간을 인식할 때, 무언가를 담아내는 베이스의 역할이란 고정관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상을 인지할 때, ‘공간’과 ‘공간이 아닌 것’을 생각해봤어요. 공간은 어떤 틀이 생기면, 알맹이가 들어가죠. 건축적인 요소로 그 알맹이가 사람이 될 수 있고, 사물이 될 수도 있잖아요. 집으로 따지면 가구가 될 수도 있고요. 이런 이분법적인 인식이 싫었어요. 안과 밖, 틀과 알맹이와 같은 경계를 희석시키는 것을 하고 싶었어요. 공간자체가 언제나 작업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공간이 아니라 공간이 작품이 되고 작품이 공간이되는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개별적으로 보면 하나의 유닛들이고 조각작품이 될 수 있지만 만약 실제로 전시장을 다 부숴버리고 작업이 남는다고 가정하면, 하나의 가벽 형태로 이미 공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죠. 조각이 공간자체가 되고 공간이 작품의 요소가 되는 믹스 상태를 시도하고 있죠.

LEE : 최근에는 가구형태의 설치를 보여주셨는데요.
CHO : 제 3의 사물로 이름붙이고 싶어요. 가구 같지만 인식하는 어떤 범위에도 소속하지 않는 그런 지점을 만들고 싶어요. 경험하고 생활하는 공간을 베이스로 공간 자체를 작품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아트라는 조건 속에서 조각이나 일시적 사물이 될수도 있죠. 이런 상황을 유연하게 유닛화될 수 있는 최종적인 공간을 만들었죠.

LEE : 앞으로 준비 중이신 기획들좀 알려주세요.
CHO : ‌‌최근 개인전이 2월 말에 끝났는데, 우연히 재미난 공간의 섭외가 들어와서 다음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개관하는 스페이스 메이라는 공간이에요. 예전에는 스스로가 엄숙한 경향이 있었는데, 탈피해보고 싶은 시기 기도 해서 재미난 기회를 찾고 싶어요. 9월에 금천 오픈스튜디오와 야외프로젝트가 있어서 바쁘게 준비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