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uki Harada

LEE : 간단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HARADA : 유키하라다입니다. 1989년 일본 야마구치에서 태어나 히로시마에서 자랐습니다. 2016년에 동경예술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2006년부터 미술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작품 제작, 전시기획, 큐레이션, 비평, 출간 등의 여러 레이어로 표현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라센’이나 ‘심령사진’을 둘러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LEE : 하라다씨는 미술가로서 기획, 출판, 작품 제작 등의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방면의 활동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HARADA : ‘작품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품’이라는 개념에 ‘전시회’, ‘비평’도 포함한 포괄적인 실천에 대하여 ‘작품’이라는 단위를 다시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프로젝트’라는 언어에 가까운 발상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실까지 ‘작품’이라는 말을 재정립하고 싶습니다. 또, 이러한 실천의 주체로서 ‘미술가(Bijutsuka)'라는 일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언어를 어떻게 번역해야하는지는 어려운 과제죠. 예를들어 단순한 영어로 ’Artist'라고 하기보다도 ‘Conceptual Artist'라 부른 편이 더 가깝겠지만, 새로운 언어를 만들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LEE : 현재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20대 미술가입니다. 일본의 20~30대 미술씬에서 주목할만한 활동이 있나요?
HARADA : 지금 일본의 젊은 미술씬을 알기에 가장 적절한 방법은 일본의 미술잡지 ‘미술수첩’의 2018년 4,5월호 ‘Art Collective 특집’을 참조하는 것이죠. 2000년대 씬과 다르게, 2010년대의 씬에서는 커머셜 갤러리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아티스트가 어찌되었든 더 ‘자유’롭기 때문에 생존 전략으로 머리를 맞대는 단체가 조직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그 중 대표적으로는 Chim↑Pom, 카오스 라운지, 파프룸을 들 수 있겠네요. 이러한 경향은 전위 시대와 비슷합니다만, 그 안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역할의 탈분화입니다. 큐레이터라는 주체에 대표되도록 전후 아트 월드에는 새로운 주체가 생겨나고 있습니다만, 현재 일본에 일어나고 있는 상황 아래에서 이러한 주체의 탈분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아티스트와 큐레이터의 경계가 애매해져가거나, 비평가가 감소하는 일과 함께, 평론의 역할이 분해되어 가는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죠.

LEE : 최근, 하라다씨는 kazan Gallary나 Cage Gallery 등의 새로운 비영리 공간에서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젊은 미술가를 중심으로한 아트 스페이스에 대하여 알려주세요.
HARADA : 주지하듯이, 현재 일본, 특히 동경에서는 커머션 갤러리보다도 비영리기관이 새로운 씬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동세대나 나아가 아래 세대 아티스트에게, 활동하는 장소로서 커머션 갤러리보다 이외의 공간이 더 익숙한 느낌을 주기 때문은 확실합니다. 이러한 것을 한마디로 ‘오픈하다’라고 불러도 좋을지요. 현재 상황도 있고, 젊은 세대가 목전의 스페이스를 만드는 케이스가 늘어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활동에는 스테미너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돈을 조달하며 운영하기 때문에, 운영 자체에 체력이 필요합니다. 때문에, 단순히 연장하는 것보다 짧은 기간이라도 유니크한 존재로 역사에 어필하는 경유가 유효해져 가고 있습니다.


LEE : 일본의 젊은 미술가에 대한 복지기금제도는 어떤가요? 하라다씨는 굉장히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시는데요. 자금이나 공간은 어떻게 조달하고 계신지요?
HARADA : 예를들어, 1953년에 설립된 ‘문예미술국민건강보험’같은 프리랜서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한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있습니다만, 가입하지는 않았습니다. 또 아티스트‘만을 대상으로한 ’사회보장제도‘는 제가 아는 한 존재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를 포함한 많은 아티스트는 부업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화가에게는 잡지에 삽화를 그리는 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전업 일러스트가 있기 때문에 상황은 더 어려워졌죠. 제 경우는 잡지 등에 비평 활동을 부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공표하지는 않았지만, 라이팅용 펜네임을 가지고 있죠. 

Yuki Harada, Author Unknown #1-1, CAGE GALLERY, 2018


LEE : Cage Gallery의 활동을 비롯하여, 하라다씨는 공간에 게릴라성이 강한 평면 작품을 자주 전시합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혹은, 이러한 게릴라 기획에 대한 하라다씨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HARADA : 신지갤러리와 플래그아트는 2006년과 2007년에 제작하였습니다. 활동을 시작할 당시입니다만, 당시부터 작품을 전시하는 장소나 방법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전부 게릴라는 아니었지만, 예를들어 2017년에 Cage Gallery의 스트리트에 걸어놓은 평면 작업을 전시할 때에는 전시회 전후로 주변 주민에게 상당히 불합리한 클레임을 받은 기억이 있습니다. 절대 호의적인 내용이 아니었지만, 접할 수 없었던 사람들과 ‘잘못된 일’로 만나야 하는 장소로서 스트리트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LEE : Kazan Gallery도 그렇지만, 일본 국내는 세대 간의 협업이 굉장히 활발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HARADA : 2018년 현재 30대 후반에서 40대 전반에 걸친 아티스트는 젊은 시절 커머셜 갤러리와 계약하여 갤러리아를 형성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작가는 전시를 기획하는 일 없이 활동이 가능했죠. 불행하게도 갤러리의 쇠퇴와 함께 활동도 감소한 사람도 있습니다. 혹은, 애초에 갤러리와 계약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활동을 지속할 수 없었던 작가도 많았죠. 이에 반해 현재 동세대 아티스트에게 있어서, 이런 일은 관계가 없어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고유한 비젼을 가지고 있는지의 문제잖아요. 인디펜던트 입장에서 활동의 스타트 라인을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비젼 중에서도 세대와 연령에 관계없이 협업하는 일은 일상적인 것 같습니다.

Author Unknown


심령사진, 타자의 부재


LEE : 우리는 세계 미술 시장의 40%를 동시대미술이 점유하는 아트 월드에 살고 있습니다. 동시대미술의 경향이 강해지고 있을 때, ‘타자의 부재’를 주장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HARADA : 미술시장과 타자의 부재 관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의식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동시대미술시장은 ‘작가’란 주체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 있다고 해도, 작품의 작가를 모른다면 가치 부여가 힘들겠죠. 한편, 오늘날 미술사는 20세기적 가치관에 따라 기술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시스템을 만듦으로써의 기술의 가능성에 재미를 느끼고 있죠. 시장은 아직 20세기적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새로운 가치관이 생기고 있지 않음에 분명합니다. 때문에, 업데이트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요. 즉, 저에게 있어서 ‘작자의 부재’는 새로운 가치관을 다시 두자기 보다는 작자가 없이(없음에도 불구하고) 성립되는 미술 작품이나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기 때문에, 먼 미래, 새로운 미술시장의 시스템에 부여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의미로 마켓의 카운터 보다도 기존 제도의 얼터너티브로서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LEE : ‘작자의 부재’는 동시대미술을 증명하는 일에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심령사진’이 궁금해집니다. 하라다씨는 미술의 외부로 다뤄지는 ‘매체’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전개하고 계신데요, 미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나요?
HARADA : 저는 심령사진을 미술의 평행 존재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수한 미술작품에는 감상자와 저자 자신의 의도를 초월한 의지를 감각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예를들어 저는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모노그램이라는 작품을 좋아합니다만, 이 작품에서 사용되는 산양의 머리에 바른 물감을 보면 그것이 발려진 이유나 의도가 알수 없는, 잠시 그것은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 ‘존재하지 않는 것’은 그 의도나 이유이며, 나아가 결단의 주체인 작가이기도 하지만, 이 감각은 심령사진을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을 일으킵니다.

2012년에 사카에 류타로(榮龍太朗)라는 친구와 함께 < 심령사진 >전을 기획했습니다.  당시, 실제 심령사진을 전시하고 싶었고, 충분히 많은 '심령사진이라 할 수 있는 사진’을 리서치했습니다만, 거의 대부분은 모조품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극소수는 모조품/ 진품 여부를 알 수 없는 사진도 있었어요. 이런 사진은 기술적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어도, 제작 의도나 이유를 알 수 없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를들어, 거기에는 우리를 무섭게 하는 ‘의도’조차 느낄 수 없었으며, 그것을 제작하는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어요. 이러한 감각을 다시말하면, 제작을 결단한 주체의 부재에 의해 설명이 가능하며, 한마디로 ‘작자의 부재’ 가 되는 것입니다.  이 감각을 레디컬하게 따진다면 기존의 미술 시스템의 얼터너티브상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LEE : 동시대미술의 아이덴티티는 더 설명할 수 없게 되었고, 혹은 설명할 필요 조차 의심스러운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한편, 하라다씨에게는 미술이란 무언가를 분명하게 하며, 정의하려고 하는 의지가 보일 때도 있죠. 여기서 하라다씨에게 ‘작품이나 미술을 분석하여 정의하는 일’에 대하여 작업과의 관계를 알고 싶습니다.
HARADA : 중요한 질문인 것 같아요. 현재, 미술세계는 개념적으로도 지정학적으로도 ‘중심’을 잃어버린 ‘모든 게 있는 것’이 되었다고 말해집니다. 실제로 일본어로도 ‘아트’라는 가타카나가 일상에서 넓게 침투하여 있습니다. 예를들어, 팝 뮤지션을 ‘아티스트’라 말하거나, 화려한 과자 문양 따위를 ‘아티스틱’이라 부르며, 대기업 이사 센터 업체를 ‘아트’라고 표현하고는 합니다. 요컨대, '훌륭한 것’ 정도의 의미는 ‘아트’로 불려지고 있는 듯 합니다.

이렇게 ‘아트’라는 개념의 고유성이 사라져버리지만, 이에 대한 근대화의 과정에서 일본어로 번역된 ‘미술(びじゅつ)’이라는  언어에는 이러한 보편성이 없습니다. 즉 그럭 저럭 말이 되는 정의로 불리었던 것이 최근 연구에서는 일본어에 많은 오역이 포함되어있으며, 번역어로서 불충하단 주장이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미술’이라는 일본어를 재정의함으로써 일본을 포함한 비서구권 문화의 ‘Art’란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Installation view of Magic, Le Tabou, 2012, Photo by Nozomu Ishimura


LEE : 하라다씨의 제작은 ‘표상’에 많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술’이라는 시리즈 전시와 표상에 대한 하라다씨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HARADA : 2012년에 이 전시회를 기획할 당시, 바로 직전 처음 “심령사진”을 기획했습니다. 당시는 심령사진 외에 러시아의 이콘화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콘화에는 화가 대신 신이 그림의 작자라는 시스템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림에 표현되어 보는 방법이 크게 변동되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이렇게 그림 보는 방법에 관한 룰을 조작함으로써 그것을 보는 사람이 생각하는 표상의 가능성을 심화하고 싶어, 2012년에 ‘주술’이라는 전시회를 기획했습니다. 또 전시회 기간중에, 전시장을 어둡게 하여 큰 스피커로 조각을 앞에 두고 음악을 듣는 이벤트도 열었습니다만, 당시에는 어두워 작품이 보일리가 없을텐데, 평소보다도 작품이 잘 보인다는 감상이 많았습니다. 표상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 흥미로운 경험이었습니다.

Yuki Harada, Essays on works and reception of Lassen in Japan., Film Art, Inc., 2013



Christian Riese Lassen

LEE : 하라다씨는 2013년에 < 라센은 무엇이었나? > 라는 책을 발간하게 됩니다. 먼저 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HARADA : 책을 발행한 계기는 출판 1년 전 기획한 < 라센 >이라는 전시회였습니다. 1990년대 전반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아티스트였던 Christian Riese Lassen이라는 인물이 있었지만, 현대미술계에서는 격하게 외면받아 왔습니다. 그 인기와 증오에 주목하며 일본 ‘미술’의 특이한 이 인물에 다시 초점을 맞춰보고 싶었던 기획이었습니다.

이 전시는 예상을 뛰어넘는 반향이 있었고, 당시 트위터에서 조그마한 소동이 있었습니다. 그 반향을 보며 전시회로 끝낼 것이 아니라, 논의를 심화시키며 기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서적 기획을 세우고 출판사에 들고 갔습니다.

이 책은 미술계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필자가 참여하였습니다. 미술평론가나 미술사가, 미술계 이외에도 사회학자, 정신과 의사등도 필자가 되어 이름을 올렸습니다. 미술에 얽힌 하나의 소재에 대하여 이렇게 다양한 필자가 참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특이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책은 드물게 히트작이 되어, 발매한 해에는 일반서적을 포함한 "북 오브 더 이어" 7위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만, 현재는 절판으로 입수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LEE : Christian Riese Lassen에 흥미를 가진 계기가 더 궁금해집니다.
HARADA : 제가 자란 가정은 특별히 미술에 관심이 없는 일반적인 환경이었습니다. 집에는 라센의 회화 작품이 걸려 있었습니다. 라센과의 첫 만남이었지만, 성인이되어 그것은 미술이 아니라는 의식이 커지며 무의식에서 잊혀졌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저건 뭐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프로젝트를 조직하게 되었죠.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몇달 후의 일이었습니다.

Christian Riese Lassen, Sanctuary, 1983 (c) Christian Riese Lassen



LEE : Christian Riese Lassen은 왜 일본에서 그렇게 인기몰이를 했을까요? (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던 나라는 제가 알기론 아시아에서 일본이 유일합니다.)
HARADA : 상징적인 일은 2018년 현재, 미국인인 그의 위키피디아가 일본어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몇명의 외국인에게 라센에 대하여 물어본 적이 있는데, 모두 존재 자체를 알지못하거나, 천박한 일러스트레이터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일본에서 그 정도로 인기있었던 이유로 먼저 라센의 그림이 당시 일본인의 ‘아트상’을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라센의 풍모가 용의 단장한 장발의 금발 백인남성이었다는 것도 크게 관계하고 있습니다. 즉, 여기에는 조금 전 말한 ‘미술’이라는 개념의 번역 과정에서 생겨난 일그러짐이 알기쉽게 반영되어 있고, 그것은 비일본어권의 문화로부터 보면 굉장히 조잡하고 추악할지 모르지만, 그 추악함이 일본인으로서의 ‘아트’였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에서는 라센은 일본 미술의 자화상이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LEE : 일본 현대미술은 왜 Christian Riese Lassen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까요?
HARADA : 그것은 미술계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 전쟁 전의 일본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만,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근대화에 승차한 일본 국민에게 있어서, 조국은 ‘서양열강’의 일원이며, 자신들은 ‘백인의 동료’라는 자의식이 넓게 분포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물론 그런 일은 없으며, 일본은 동아시아의 일원으로 일본인은 황인종이며, ‌이러한 오독이 일본의 아시아 침략까지 이어졌죠. 전후사회에서도 이러한 의식은 일부 잔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일본에서 미술에 관한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 ‘우리의 미술사’는 ‘서구의 미술사’에서 이어져온 것이기 때문에, 라센이라는 조잡한 존재를 ‘일본의 미술’로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문제를 강조하며 일본에서 1945년 이후에 축적되어온 풍부한 ‘전후미술의 역사’를 ‘무’로 돌리는 것도 빈약한 결과로 연결된다는 것도 이해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저 개인은 일본의 ‘전후미술사’의 계보와 그것에 대치되는 것으로서 라센적인 ‘추악한 역사’의 계보를 대립하지 않고 대치되는 한 세트의 개념으로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이것은 일본 혹은 동아시아에서 ‘미술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일에도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Yuki Harada, Shinrei-shashin/New Jersey, Kanzan Gallery, 2018, Photo by Katsura Muramatsu


LEE : 하라다씨가 지금까지 관계해온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젝트가 있나요?
HARADA :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하지만, ‘기억'이라는 점에서 말하자면, 현재 진행하며 힘쓰고 있는 심령사진의 프로젝트가 인상에 남아있습니다. 한번도 만나본적 없는 사람의 ‘보통의 사진’을 대량으로 수집하고 분류, 정리하는 작업을하고 있는데요. 많은 사진을 보다보니 점점 제게 없는 기옥이 침식되어, 사진에서 봤을 뿐인 만난 적 없는 사람이 꿈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같은 일을 지속하고 있는데, 사진이라는 표상을 통해 인간의 기억이 조작되거나 의심스러운 것임을 알면서도 애착을 느끼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무섭지만요.(웃음)

LEE :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HARADA : 심령사진 Shinrei Shashin이라는 일본어를 외국어로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Ghost Photography나 Spirit photography등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어느쪽도 충분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요. 되도록 정확하게 번역하려면 당시 일본의 사회 정황을 설명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며, 미디어 환경에 대한 리서치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포괄적인 조사를 통하여 한권의 서적을 만들어 전시회로 전개해보고 싶습니다. 이정도의 대형 프로젝트를 남은 인생에서 5~10개정도 할 수 있을까 인생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습니다.